‘굳이’에는 장음이 없다. 하지만 굳이를 발음할 때는 ‘구-지이’라고 길게 발음해야 제맛이다. ‘구’를 길게 끌수록 애써 일을 만들어 고생이라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길 수 있다. 4년 만에 에이코랩건축사사무소(이하 에이코랩)의 프레임을 진행하면서 나도 모르게 굳이를 연발했다. 최소한의 건축적 개입, ‘건축가 없는 건축’을 표방한다는 이들의 언명이나 자연스러워 보이는 외양과 달리 에이코랩의 건축은 ‘대단한 건축적 의지’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에게 왜 건축을 하느냐고 묻는다. 생산을 주저하면서도 수행하는 이유는 사적 생산이 타자와 관계의 파장을 일으키는 경험 때문이다. 사회적으론 생산의 진동과 그로 인한 관계 모두가 재앙이며 동시에 기적이다. 만일 우리의 세상이 그 어느 방향이든 진화의 노상에 닿아 있다면, 그러한 재앙의 비극과 기적의 희극도 자연의 일부다. 그 희비극의 과정이 끝나는 때, 비극적 불평도 희극적 감동도 사라지고 그곳에 또 다른 주저함과 사적 진동이 존재할 것이다.
9월 4일부터 7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프리즈 서울이 개최됐다. 아트 바젤과 함께 세계 양대 아트 페어로 꼽히는 프리즈는 2003년 런던에서 시작해, 뉴욕(2012), 로스앤젤레스(2019), 서울(2022)로 개최 도시를 확장해왔다. 1~2회 때 그랬듯 이번에도 프리즈 서울은 화제의 중심에 있다. 미술 전문지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을 비롯해 일간지 문화면까지 여러 매체에서 주목하는 프리즈는 회차를 거듭할수록 도시적 스케일의 이벤트가 되어가고 있다. 프리즈(frieze)라는 고전 건축 용어가 서울의 미술 신을 들썩이게 하는 이 흥미로운 현상을 살펴봤다.
암스테르담 건축센터(Arcam)의 <형태는 금융을 따른다: 스프레드시트로서의 도시>, 시카고 건축센터의 <실험실로서의 루프: 다운타운을 변화시키다>, 에스토니아 건축박물관의 <운동하는 공간: 에스토니아 건축의 한 세기>, 인도네시아 비에스디 시티(BSD City)의 <아세안 건축가 도서 전시회> 등 해외 건축 전시 소식을 모아서 전해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예림 기자입니다. 요즘 부쩍 주말이나 연휴를 끼고 일본 여행을 가는 친구들이 많이 보여요. 제가 바로 그중 하나입니다. 이번 교토 여행에서 발견한 보석을 소개할게요.
9월의 마지막 주말이었죠. 까마득히 밀려오는 일과 휴일들을 앞두고 “지금 떠나야 한다”는 계시를 받았다네요. 당장 하루 묵을 숙소도 없이 다음 날 출발하는 비행기 표를 끊고 교토로 날아갔답니다. 무계획(무생각) 4박 5일 여정은 여러모로 바보 같았지만 그래서 즐거웠어요. 목적지 없이 걷다가 재미난 것 앞에서 멈춰 서는 것이 일정의 태반이었죠. 덕분에 오늘 소개할 벼룩시장을 우연히 만날 수 있었어요. 바로 교토시청 앞, 한 달에 한 번 일요일에 열리는 벼룩시장입니다.
교토시청 앞 벼룩시장 풍경
LP판을 뒤적뒤적
카레가 먹고 싶어 거리에 나온 일요일 낮, 딱 봐도 오래되고 중요해 보이는 건물 앞에서 분주한 움직임을 포착했어요. 가까이 가 보니 어린 시절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리던 바자회, 딱 그런 모습이 펼쳐졌어요. 삼삼오오 돗자리에 깔린 물건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죠. 이제는 커 버린 아이들의 장난감과 옷가지를 가지고 나온 사람도 있었고, 빈티지 LP판을 잔뜩 쌓아 놓은 사람도 있었어요. 유명 애니메이션의 피규어나 찬장 깊숙한 곳에서 꺼내 왔을 유리잔과 접시들도 구경할 수 있었고요. 무엇보다 신이 난 이유는요, 대부분이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가격이었다는 점! 아주 작은 캐리어뿐인 여행자의 신분을 잊고선 이것저것 집어 들게 되더군요.
귀여운 잔을 100엔에 샀어요
어떤 시계를 골랐을까요
고르고 골라 아침에 커피를 내려 마실 머그잔을 100엔에, 기분 좋은 날 차고 싶은 빈티지 시계를 500엔에 구매했어요. 참! 정겨운 벼룩시장답게, 판매자와 싱글벙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기분 좋게 흥정에 성공할 수도 있답니다. 찾아보니 교토시청 앞뿐만 아니라 오사카-교토의 시장 협회에서 관리, 개최하는 플리마켓이 때마다 도시 곳곳에서 열린다고 해요.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분이라면 웹사이트에서 플리마켓이 열리는 장소와 날짜를 미리 알아봐 두면 좋겠네요. 이런 소소한 경험이, 때론 어떤 멋진 관광지보다도 더 진하게 기억에 남게 될지도 모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