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계정 한두 개쯤은 가지고 실시간으로 일상을 공유하며 소통하는 시대. 디지털이 선사한 실시간이란 시간성은 오히려 오래된 공간에 집착하는 요즘 트렌드를 설명하는 단서가 아닐까. (...) 이번 특집 곳곳에서 발견되는 건축가 최춘웅의 태도는 가급적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숨겨져 있다가 인간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스케일의 기반시설을 두고 그는 “깨끗이 청소”하여 “공간 자체만 남도록 편집”하는 일을 자신의 작업으로 소개한다. “언뜻 소극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방향을 알고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액티비즘일 수도 있다.” (...) 과거의 공간에 대한 욕망이 넘실대는 시대, 우리는 일견 건축가의 색채를 지워가는 듯한 최춘웅의 작업에서 오히려 공간의 의미를 재규정하는 비판적 건축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버려진 도시 기반 시설을 문화공간으로 바꾼 노량진 지하배수로(2020~2022), 마곡문화관(2018~2021), 소행성 G(2013)를 중심으로 나눈 대담 중 일부입니다.경험해보지 못했던 과거에 대한 욕구를 공간으로 나타내는 최근의 다양한 현상에 대해 건축가가 취할 수 있는 관점, 태도를 새롭게 생각해볼 수 있는 대화입니다. 대화 전문은 '자세히 보기'를 눌러 만나보세요!
김광수 인간이 점유하는 공간은 스토리텔링을 만들기가 쉽지만 이곳은 비장소이기 때문에 스토리텔링이 어렵다. 대신 공간 자체로 묘한 서사적 감각을 자극한다. 사진으로 처음 이곳을 봤을 때 ‘리미널 스페이스’가 떠올랐다. 이 세계와 전혀 다른 폐쇄된 세계이며 교류도 없고 사람도 없는, 그야말로 정의하기 힘든 리미널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콘크리트, 석재, 벽돌이 알 수 없는 말을 거는 듯한 공간은 경험자가 직접 서사를 상상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최춘웅 이성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인 것 같다. 이를테면 물의 입장에서 공간을 보거나 열차가 끊임없이 지나는 상황 자체도 서사가 되는 것 같다. 혼자 지하에 오래 있다 보면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리고 축축한 느낌도 엄습해 사람이 들어오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를 느꼈다. 이 공간을 보면서 도시에 인간만 사는 게 아니라는, 도시가 인간을 위한 곳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보존이냐 개발이냐의 문제에 놓여있던 힐튼호텔이 작년 12월 31일에 문을 닫고 철거를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힐튼호텔은 미스 반 데어 로에에게 사사한 김종성 건축가가 펼친 대표적인 모더니즘 건축물로, 철거를 앞둔 사실에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갈수록 깊어지는 아름다움을 보이는 힐튼호텔의 아우라를 영상에 담았습니다. 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 조남호 소장의 인터뷰와 함께한 영상을 통해 힐튼호텔과 이 밖에 철거를 직면한 건축물을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